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국의 아침 (문단 편집) === [[조기종영]] === 원래 100회로 예정되었던 작품이지만, [[이환경]] 작가가 [[시청률]]을 [[이유]]로 [[조기종영]]을 요청하여 94회로 줄어 들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9&aid=0000230934|#]][* 기사에는 86회로 되어 있으나, 결국 이듬해 [[2003년]] 1월 94회로 막을 내렸다. 회차에 대해서는 [[드라마]] 공홈 참고. [[태조 왕건]]을 20편 연장방영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환경]] 작가가 제국의 아침을 버리고 제대로 전념한 작품이 바로 '''[[야인시대]]'''. 그 때문에 남은 후반부에서는 급전개를 보인다. 광종의 호족 숙청 정책 자체를 평주 호족들의 반란을 진압하고 국문을 하는 장면 하나로 거의 때워버렸으며, 호족들을 숙청한 뒤의 이야기는 통째로 생략해버렸다. 특히 마지막회 중반까지 공포정치를 보여주던 광종이 갑자기 악몽을 꾼 후 반성하고 남은 치세에 선정을 약속하는 부분은 압권. 그나마 배우의 연기력이 뛰어났던 덕에 광종이 확실히 제정신이 아니라는 느낌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사실 광종의 공포정치는 상당히 복잡한 배경을 지니고 있고 그 후폭풍이 광종 사후인 경종 재위기간에도 만만치 않았음을 고려하면 이 공포 정치를 단순한 광증으로 그려내고 부실한 급전개로 마무리한 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그 후폭풍을 아주 안 그리려고 한 것은 아닌데, 대표적이 [[노비안검법]]과 관련된 대목[* 원래 유튜브에 '노비안건법 - 왕과 노비 입장', '노비안검법 - 신하 입장'버전의 영상이 있었지만, 현재는 다 삭제된 상태이다.]이 대표적이며, 공포 정치를 시행하면서도 죄 없는 자들을 숙청하는 것은 알지만 다 나라를 위해서라면서 괴로워하며 독백하는 장면도 있었다. 그 외에 경종때 잠깐 시행되는 복수법에 대해서도 여러차례 언급되는데 이 또한 후폭풍들 중 하나였다. 그 외에도 잔혹한 장면이 많아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였다. [[참수형]], [[능지형]], [[거열형]]은 기본. 황제의 국문 신에서는 시행장면이 등장하지는 않으나, 코를 베는 의형[* 이 장면은 직접 나온다. 다만 진짜 코를 베지는 않고 코에 칼을 대는 장면에서 화면이 전환.]과 발 뒷꿈치를 베는 월형, [[영 좋지 않은 곳|궁형]] 등의 형벌을 가하라는 지시가 직접 등장했으며, 혜종의 자손들이 숙청당하는 장면에서는 혜종의 어린 아들이 나무에 목매달려 죽는 하드코어한 장면이 여과없이 방영되었다. 마지막화에서는 [[궁예(태조 왕건)|호족들을 철퇴로 처형하는 장면을 상당히 강도높게 집어넣었다. 문자 그대로 선혈이 낭자하게 때려죽인다.]] 이런 잔혹하고 과격한 장면들은 [[무인시대]]까지 이어졌다. 평균 시청률은 20% 초반대로, [[태조 왕건]]의 버프에 [[역사스페셜]]까지 동원 되는 광고 효과로 첫 방송 시청률은 30% 초반선[* 최고 시청률은 2회의 33.7%(일본 예고편 출처) 혹은 4월의 31.9%나 35.5%[[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ctg=15&Total_ID=1952211|# (중앙일보 기사)]]. 이게 얼마나 높은 거냐면, 2000년대 전반기 드라마 가운데 첫 방송(1~3회)에서 '''세 번째로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였다(...) 참고로 [[태조 왕건]]과 [[명랑소녀 성공기]] 다음.]에서 시작했으나, 결국 그게 최고 시청률로 끝났다. 이후 혜종 시대를 다루면서 지루한 덕택에 10% 초반선까지 뚝 떨어졌다가 정종/광종 갈등 시점에 22.6%까지 다시 올라가기도 했다. 의외로 따지고 보면 직후에 방영된 [[무인시대]]와 평균 시청률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거나 되려 높았다.[* [[무인시대]]는 2003년 6월 28일부터 시간대가 주말 오후 9시 45분에서 10시 10분으로 옮겨지면서 시청률이 20%대로 떨어졌고, 급기야 후반기 때 같은 시간 방영된 SBS의 [[파리의 연인]] 탓인지 최종회 시청률이 13.6%에 머물렀으며 심지어 한자리수 시청률까지 가기도 했다. 반면에 제국의 아침은 일정 시청률을 유지한 셈이었지만 SBS가 제국의 아침 첫 회부터 [[유리구두(드라마)|유리구두]]를 통해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를 부활시키면서 2인자에 머물렀다.] 그러나 꾸준한 시청자, 특히 매니아층이 확보되지 않은 사정으로 제국의 아침은 '''완전히 잊히고 말았다.''' [[궁예(태조 왕건)|궁예]], [[견훤(태조 왕건)|견훤]] 네타로 십수 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대중적으로 유명한 [[태조 왕건]], 사극 매니아들에겐 비운의 수작으로 재평가받는 배우들의 [[무인시대]]와 달리, 그 사이에 껴서 이도저도 아닌 제국의 아침은 그대로 묻혀버린 것이다. 물론 [[2002 한일 월드컵]]이나 [[제16대 대통령 선거]] 같은 악재도 많았지만.[* 대선 시즌이라서 그런지 참언(?)까지 나돌았다. 당시, 한화갑 [[새천년민주당]] 대표는 [[광주역]] 광장 유세에서 “한국방송의 사극 <제국의 아침>에서 광종 황제가 탄 백마의 앞다리에 ‘노’라고 쓰여 있었다”며 “[[노무현]] 후보의 당선을 예고하는 상서로운 징조”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47&aid=0000017427|# 사진]][[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14&aid=0000042336|#]] 실제로 [[15대 대선]]에서도 [[용의 눈물]] 이방원의 말에 DJ라고 쓰여져 있던게 눈길을 끌었다. [[http://djroad.com/bbs/sub_zboard.php?id=djboard1&page=33&sn1=&divpage=6&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1952|#]] 참고로 말의 낙인은 주로 소유주의 이니셜 등을 뜻하는 것으로 특정 후보와는 관계가 없다. 참고로 현재 유료로 서비스되는 유튜브 KBS Drama Classic 채널에서는 해당 부분을 옅은 모자이크로 처리하였으나, 완전히 다 모자이크된 것은 아니라 약간의 확인은 가능하다.] 그래서였는지 모르겠지만, 2002년 [[KBS 연기대상]]에서 출연 배우들 중에 상을 받은 건 최우수상을 받은 메인 주인공 광종 역의 [[김상중]]뿐이었다.[* 사실 화제성이 덜 된 것도 있었겠지만 [[김상중]]의 광종 연기만큼은 자타가 인정할 정도로 출중했기에 이 수상에 대해 반론은 없었다. 게다가 지금처럼 상을 남발하던 시기도 아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